게임 조금 잡것 가득
셜록 홈즈: 크라임&퍼니시먼트 - 천재 탐정의 추리극 본문
타이틀명 : Sherlock Holmes: Crimes and Punishments
출시일 : 2014.09.30(steam)
개발 : Frogwares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셜록 홈즈'는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일 것이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모습을 비춘 위대한 탐정과 조수 왓슨의 이야기는 당연히 게임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셜록 홈즈 게임 시리즈를 개발해온 프로그웨어즈는 PS4가 출시된 시대에 맞춰 10번째 셜록 홈즈 게임을 출시했다. 그것이 바로 본작인 '셜록 홈즈: 크라임&퍼니시먼트'(이하, 셜록 홈즈: 죄와 벌)다.
본작의 그래픽은 아주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꽤나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대의 타 작품들과 비교하면 배경 그래픽이나 모션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몰입에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특히 인물 그래픽에 공을 들여 마치 'LA 느와르'처럼 표정이나 인물 묘사가 수사의 힌트가 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만 그래픽을 제외한 기술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문제를 보인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잦고 긴 로딩으로,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러 장소를 돌아다녀야 하지만 이동할 때마다 매번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홈즈의 모습과 함께 기나긴 로딩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나마 로딩 중 사건 기록과 증거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두어 로딩으로 인한 지루함은 줄였다는 점은 위안이 된다.
셜록 홈즈는 수수께끼와 미스테리한 사건을 사랑하는 탐정이다. 언제나 논리적으로 사건을 판단하며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수사에 나선다. 그가 가진 뛰어난 관찰력은 사건 현장의 사소한 단서를 모두 찾아낼 뿐 아니라, 사람의 직업과 심리를 예리하게 통찰해낸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천재적인 탐정임과 동시에 매우 괴팍한 인물이기도 하다. 매 사건의 프롤로그마다 그의 특이한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을 가리고 사격 연습을 해 사무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건 기본이요, 오로지 왓슨이 올 거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주저 없이 자신의 몸에 독약을 시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대 트렌드에 맞춘 것이 아닌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셜록 홈즈의 캐릭터성은 오늘날까지도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천재 탐정이 해결하는 6개의 사건들은 낡았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 정도로 잔잔하게 진행된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의 추리물들과 다르게 본작의 모든 사건들은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고전적인 스타일을 유지한다. 복잡한 트릭이나 잔인한 살해 현장보다 원작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만, 작중 셜록 홈즈에게 위기를 가져오는 인물이 전혀 없어 천재 탐정의 능력만이 부각되고 긴장감이 부족했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본작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쉽고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단서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이미 조사한 단서를 게임상에서 표시해 줄 뿐 아니라 앞으로 조사할 것이 남아있는 단서 역시 모두 알려준다. 게임이 표시해 주는 임무 목표를 그대로 따라다니며 단서를 찾기만 해도 해당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얻을 수 있을 지경이다. 상상력을 통해 사건을 재현하거나 특유의 통찰력을 통해 숨겨진 단서를 찾는 홈즈의 능력 역시 어느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항상 알려주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 헤맬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현장에서 찾아낸 단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대부분 간단한 미니 게임을 통해 행해진다. 돼지고기에 어부용 작살을 던져보거나 아이스크림 제조기로 얼음 단검을 만들어보는 등 흥미로운 것들도 일부 존재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미니 게임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제작진은 원하지 않는 미니 게임을 건너뛸 수 있도록 배려해두었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다면 미니 게임을 전혀 하지 않아도 게임 플레이에 지장이 없다.
이처럼 작품이 전반적으로 매우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최소한의 게임 플레이는 유지하면서도 플레이어가 귀찮음이나 지루함을 느낄만한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냈다. 특히, 모아둔 증거, 인물 묘사, 대화록, 사건 자료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주는 수첩 시스템은 확실히 편리했다.
과한 친절이 게임의 난이도를 너무 낮춘 느낌이 있긴 하지만 장르의 한계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친절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단서를 수집하는 부분에서 플레이어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오롯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것에만 게임 플레이를 집중시켰다.
추리 시스템은 본작의 백미로, 사실상 본작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건을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들을 조합하다 보면 다양한 명제가 생성된다. 서로 모순되는 명제를 피해 가며 알아낸 사실을 종합해 나가다 보면 결론을 내리고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가 있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한 사건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정해진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종류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추리를 통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혹은 범인을 정확하게 찾아냈더라도 그 동기나 범행 수법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모순을 지적해 주는 것 이외에는 시스템적인 도움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에 꽤나 신중한 추리를 요구한다. 하나의 결론을 골랐다 하더라도 그 선택에 따른 상황을 보여주며 선택을 바꿀 기회를 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추리를 곱씹어 보게 된다. 이 신중한 선택이야말로 셜록 홈즈: 죄와 벌의 가장 큰 재미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면 엄격한 법에 따라 범인을 규탄할지, 아니면 딱한 사정을 생각해 선처를 베풀지 선택할 수 있다. 플레이어만의 셜록 홈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선택지 시스템 같지만 아쉽게도 이 시스템은 본작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른다 해도 그 영향은 매우 미미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 원인은 바로 본작의 구성에 있다.
본작은 6개의 사건이 일체의 연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나 불한당을 통해 전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던 시도는 보이나, 그 이야기가 너무나 짧고 의미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된 6개의 에피소드를 플레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작품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주제나 스토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사건에서 고른 선택은 이후의 사건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자신이 고른 선택지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약간의 대사 변경과 신문 기사로 나오는 짧은 후일담이 전부다. 사건이 끝날 때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고른 범인과 선택의 비율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임계 트렌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결국 작품과 완전히 따로 노는 의미 없는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아쉬운 부분이 다소 존재하지만 그래도 셜록 홈즈: 죄와 벌은 괜찮은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건들과 편리한 시스템은 확실히 잘 구축되어 있으며, 추리 시스템만큼은 작품의 특징을 살려낸 좋은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셜록 홈즈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탐구할만한 멋진 캐릭터다.
-총점-
7/10
'셜록 홈즈: 죄와 벌'은 심도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을법한 친절하고 대중적인 작품이다. 고전 문학이나 어드벤처 게임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혹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추리 어드벤처를 찾는 게이머라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241260?snr=1_5_9__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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