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조금 잡것 가득
Beyond: Two Souls - 게임이길 거부한 게임의 말로 본문
* 스토리에 대한 누설이 있습니다.
타이틀명 : Beyond: Two Souls
출시일 : 2013.10.08(PS3) 2020.06.18(steam)
개발 : Quantic Dream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Beyond: Two Souls'(이하 비욘드 투 소울즈)는 한눈에 봐도 '퀀틱 드림'의 어마어마한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다. 전작인 '헤비 레인'보다도 더욱 간략화된 ui부터 화면의 위아래를 자르는 레터박스, 주연으로 캐스팅된 할리우드 스타들, 페이스 캡처, 모션 캡처, 영화와 동일한 기법이 적용되는 카메라 워크까지, 영화처럼 보이고 싶다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퀀틱 드림은 이 작품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게임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이 모순적인 게임은 최악의 결과물로서 완성되고야 말았다. 영화 같은 게임을 표방하는 모든 게임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작품이자 게임으로 영화를 따라잡고 싶다는 망집의 결정체야말로 바로 이 비욘드 투 소울즈다.
본격적인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기 앞서 본작의 몇 안 되는 장점을 꼽아보자면 뛰어난 그래픽과 사운드트랙이 있다. PS4로 한번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발매된 이래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작품의 그래픽이 여전히 뛰어나다고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llen Page와 Willem Dafoe의 연기는 정교한 페이스 캡처를 통해 게임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으며 OST의 퀄리티 역시 흠잡을 곳 없다. 그리고 본작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난다. 비욘드 투 소울즈의 그래픽과 음악은 분명 훌륭하지만 그 너머에는 참담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일단, 비욘드 투 소울즈의 게임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사실 본작의 게임 플레이에 관해서는 다룰 이야기가 거의 없다. 화면 상에 하얀 점이 보이면 조작, QTE(Quick Time Event)가 나오면 조작, 초능력이 필요하면 세모 버튼을 눌러서 조작하면 끝이다. 이동마저 게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본작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구간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조작을 반복하다 보면 나오는 컷신을 감상하는 것이 바로 비욘드 투 소울즈의 게임 플레이다. 결국 조작은 본작을 '감상'하는 동안 손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팝콘 정도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끔찍한 조작감과 불편한 카메라 시점이 조화를 이루는 이 혁신적인 조작은 식탁에서 컵을 집거나 성냥에 불을 붙이는 등의 중대한 상황에서 질리도록 자주 사용된다.
어디까지나 본작이 게임이라는 점을 생색내기 위해 넣은 QTE는 상상 그 이상으로 형편없다. 필자는 QTE를 실패할 경우 해당 장면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QTE를 일부러 실패하면서 몇몇 장면을 감상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QTE를 모두 성공했을 때와 아무런 차이점이 없는 경우가 다수 존재했다. 물론, QTE를 실패할 경우 전개가 변화하는 구간도 꽤나 존재했지만 애초에 전혀 변화하지 않는 구간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조작이 얼마나 의미 없는 행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끔찍한 점은 조작뿐 아니라 게임의 모든 부분에서 플레이어의 개입이 극도로 최소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욘드 투 소울즈는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당 챕터의 모든 분기점을 보여주며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른 게임들을 흉내 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본작의 선택은 그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플레이어가 어떠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을 뒤틀어 다른 선택과 동일한 결과로 흘러가게끔 만든다. 작품 전체에서 의미 있는 분기점이 10개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선택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주어지는 5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면 원하는 엔딩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놀라운 작품이 바로 비욘드 투 소울즈다.
결국 플레이어의 모든 행위는 통제되고 선택은 가로막아지며 주인공과 플레이어 사이의 정서적 연결은 철저히 분리된다.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에 거대한 벽을 세워진 상황에서는 그 어떤 몰입감도 느낄 수가 없다. 헤비 레인이나 텔테일 게임즈의 어드벤처 게임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문제점이긴 하지만 본작은 그 이상으로 나쁜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비욘드 투 소울즈는 그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감상시킨 스토리마저 형편없다는 점이다.
본작의 스토리는 주인공 '조디 홈즈'와 그녀와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수수께끼의 존재인 '에이든'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에이든은 조디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조디에게 종속되어 있는 상태다. 장난을 좋아하고, 질투심 많고, 통제 불가능한 에이든 덕분에 조디는 초능력자로 취급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연구소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선천적인 초능력으로 인해 불행한 주인공이라는 진부한 소재는 안타깝게도 전혀 흥미롭지 못하다.
가뜩이나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써낸 이야기는 그저 조디의 불행한 삶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비욘드 투 소울즈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 조디의 삶을 통째로 그려냈지만 스토리의 완급조절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언제나 조디는 불행하다. 어릴 때도 불행하고, 청소년기에도 불행하고, 성인기에도 불행하다. 모든 챕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조디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껴야 한다는 말인가? 앵무새처럼 조디 홈즈의 불행함만을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다.
12시간가량의 플레이 타임 동안 수많은 사건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작중 조디는 CIA 훈련도 받고, 내전국에 홀로 침입하고, 주요 인사를 암살하고, 지명수배범이 되고, 스파이 역할을 수행하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중국의 비밀기지를 폭파시키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만나고, 세계를 구한다. 노골적으로 조디를 다양한 배경에 보내고자 애쓰는 각본은 개연성과 자연스러운 내러티브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며 클리셰로 가득한 의미 없는 연출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일관된 주제 하나 없이 난잡하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그저 할리우드 영화 같은 화려한 장면을 마음껏 보여주고자 하는 제작진의 그릇된 야망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에이든이 가진 능력은 이 터무니없는 사건들의 개연성을 모두 해결하는 만능열쇠로서 작동된다. 작중 에이든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만능'이다. 작품의 전개와 게임으로서의 조작을 위해서 에이든에게는 터무니없이 많은 능력이 부여되어 있다. 에이든은 염동력을 가진 것은 물론, 인간과 동물에 빙의하고, 보호막으로 화염이나 총알을 막아내고, 죽은 사람의 기억을 읽고, 상처를 치유하고, 사이코메트리로 과거를 알아내고, 다른 세계의 존재들을 물리치고, 전자기기를 해킹한다. 모든 사건과 위기 상황이 에이든이 가진 수많은 능력을 통해 손쉽게 해결되는 모습은 성의 없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진부한 소재와 뻔한 클리셰로 점철된 형편없는 스토리는 그 진행 방식마저 괴팍하다. 오리지널 모드를 기준으로 비욘드 투 소울즈의 스토리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매 챕터마다 과거와 미래를 정신없이 오가며 조디 홈즈가 겪어온 일생을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시열대를 마구 꼬아놓은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는커녕 역효과만을 잔뜩 발휘했다는 점이다. 한 챕터에서 어린 조디를 플레이했다면 그다음 챕터에서는 성인 조디가 나오고 또 그다음 챕터에는 뜬금없이 청소년 조디가 나온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챕터 배치는 단순히 스토리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과거 챕터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린다.
단적인 예로, 조디가 CIA 요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챕터가 나왔다면 그것은 결정된 미래다. 플레이어가 이후 나오는 과거 챕터에서 가정집에 불을 지르거나 어린아이의 목숨을 위협했다 하더라도 조디는 무조건 CIA 요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모두 보여주는 연출은 가뜩이나 의미 없는 게임 플레이에 더해서 플레이어의 선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줄 뿐이다.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 연출에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본작의 결말은 이러한 연출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그 이유가 끔찍할 정도로 사소하고 의미 없다는 것이다.
모든 챕터가 시간 순서대로 정렬되는 리믹스 모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시열대를 혼합해서 얻는 효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본래 제작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더 깔끔한 진행이 가능해진다. 다만, 시간 순서대로 배열된 스토리의 허술함이 적나라하게 그 민낯을 드러낼 뿐이다.
여러 시간을 난잡하게 오가는 동안 캐릭터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본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한 챕터에서만 잠시 등장하고 마는 단역에 그친다. 하지만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선택 시스템으로 인해 단역들의 캐릭터성이 망가져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플레이어의 선택은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서 뒤틀린다. 따라서 선택에 따라 조디에게 호감을 느끼고 키스를 나누던 남성이 잠시 뒤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디를 모욕하기도 하고 조디와 대화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노숙자가 조디와 함께 오래 지낸 것 마냥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비중 있게 등장하는 조연들 역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CIA 요원인 '라이언 클레이튼'이다. 처음에는 그저 조디를 강제로 끌고 가기 위해서 파견된 비중 없는 인물처럼 소개된 라이언은 이후 과정은 알 수 없지만 험악했던 관계를 개선하고 조디와 서로 호감을 가진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플레이어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혼란스러움은 한층 더 가중된다. 결국 라이언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나 행적이 전혀 구축되지 못한 상태로 플레이어는 이야기를 따라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비욘드 투 소울즈에 남아있는 것은 조디와 에이든의 관계뿐이다. 이 두 주인공에 대해서만 제대로 묘사해냈더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스토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본작은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묘사조차 완벽하게 망쳐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불행한 삶을 겪은 조디는 에이든이 없었다면 자신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에이든이 사라지기를 소망하곤 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마치 편리한 도구를 찾는 것 마냥 에이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도움을 요청한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인지 저주처럼 여기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둘의 관계는 에이든의 정체가 밝혀지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야 소중했다는 듯이 유야무야 결론이 난다.
스토리 상에 깔려있는 전제와 어긋난 게임 플레이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몰입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비욘드 투 소울즈의 이야기는 에이든이 '통제 불가능한' 존재라는 가정하에 진행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조디와 에이든을 모두 조종할 수 있으며 당연하게도 에이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조디로 플레이하다가 에이든을 조작해 조디를 괴롭게 만든 다음 에이든을 증오하는 조디의 모습을 보면 마치 혼자서 멍청한 인형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나마 조디와 에이든 플레이어가 나뉘는 2인 모드로 플레이할 경우 상황은 조금 나아지지만 한쪽이 플레이하는 동안 다른 한쪽이 손을 놓아야 하는 어설픈 수준의 2인 모드만으로는 도저히 허술한 관계 묘사를 수습할 수가 없다.
-총점-
4/10
비욘드 투 소울즈는 퀀틱 드림이 내세우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가진 단점이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발현된 작품이며, 게임도 영화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어설픈 각본과 최악의 게임 플레이는 조금의 몰입감조차도 유도해내지 못했다. Ellen Page가 우는 모습을 실컷 보고 싶은 그녀의 비뚤어진 팬이 아닌 이상 이 게임을 플레이해볼 가치는 조금도 없다. 비욘드 투 소울즈는 게임 개발자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안 좋은 사례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96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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