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조금 잡것 가득
A Plague Tale: Innocence - 아쉬운 순수함의 이야기 본문
타이틀명 : A Plague Tale: Innocence
출시일 : 2019.05.15(steam)
개발 : Asobo Studio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14세기 유럽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흑사병의 창궐일 것이다. 중세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든 이 끔찍한 역병은 백년전쟁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던 프랑스마저 자비 없이 덮쳤다. 'A Plague Tale: Innocence'(이하 플레이그 테일)는 참혹했던 14세기 중반 프랑스를 배경으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해 창작해낸 작품이다.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들과 역병 그 자체나 다름없는 수천, 수만 마리의 쥐들 사이에서 '아미시아 드 룬'과 '휴고 드 룬' 남매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플레이그 테일은 황폐화된 나라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제대로 묘사해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광기에 빠진 민중은 죄 없는 사람들을 불태우며 역병의 책임을 묻는다. 가축들의 시체는 아예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으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아예 새로운 강을 만들어낼 지경이다. 더럽고, 축축하고, 악취가 풍기는 듯한 플레이그 테일의 배경은 뛰어난 그래픽을 통해 여과 없이 표현된다.
배경 이외의 그래픽적인 부분에서 가장 공들여 표현된 것이 있다면 바로 '쥐'다. 본작에서 쥐는 단순한 질병의 매개체가 아닌 일개 인간이 대적 불가능한 존재이자 절대적 공포로서 묘사된다. 작은 횃불 하나 없이 어둠 속에 서있는 인간은 쥐 떼의 좋은 먹이가 되어 산 채로 뜯어먹힐 뿐이다. 어마어마한 수의 쥐들이 찍찍대며 홍수처럼 들이닥치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메우는 쥐 떼는 단순한 연출이 아닌 게임의 핵심 요소로서 작동한다.
본작에서는 '시프' 시리즈나 '앨런 웨이크'처럼 빛과 어둠을 활용한 메카닉이 사용된다. 다만, 잠입이나 고도로 복잡한 퍼즐에 활용되는 것이 아닌 극도로 단순화시킨 규칙 하나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빛 아래에 있으면 안전하고, 어둠 속에 있으면 쥐 떼에게 죽는다.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법칙은 작품 전체에 통용된다.
쥐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주위에 있는 횃불이나 나뭇가지에 불을 밝혀 지나간다.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을 홀로 정찰하는 병사가 있다면 등불을 부숴 쥐들의 먹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처럼 빛과 어둠을 활용하는 게임 플레이는 퍼즐과 전투를 가리지 않고 작품 전체에서 이루어진다.
불을 밝혀 길을 여는 것은 본작에서 단골로 쓰이는 퍼즐 소재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다양한 장치가 이용된다. 천장에 걸려있는 시체나 돼지를 산 채로 쥐의 먹이로 사용해 쥐 떼를 유인해내기도 하며 동료들에게 명령을 내려가며 여러 기계장치를 동시에 사용해 퍼즐을 해결하기도 한다. 대체로 퍼즐은 기발하다기보다는 다른 게임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며 기본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문제는 퍼즐의 난이도가 과하게 낮게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 퍼즐 구간이 존재한다면 거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논리적으로 그 퍼즐을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작은 힌트를 주는 것을 결코 참지 않는다. 캐릭터들의 대사와 카메라를 이용해 모든 퍼즐에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저 정해져 있는 하나의 답을 따라 기계처럼 퍼즐을 해결할 뿐이다. 여러 가지 해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기발한 연출이나 장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루함은 배가된다.
전투와 잠입의 게임 플레이 역시 퍼즐처럼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다. 플레이그 테일에는 3인칭 잠입 액션 게임으로서 기본적인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주변 사물이나 아이템을 활용해 소리를 발생시켜 적들을 교란시키는 것이 주된 게임 플레이며, 특히 적에게 대항할 수단이 부족한 게임 초반은 몸을 숨기는 것이 강제된다. 거기에 잠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플레이어에게는 두 가지의 패널티가 주어진다. 하나는 주인공인 아미시아가 어떤 공격이건 상관없이 단 일격이라도 허용하는 순간 사망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미시아가 사용하는 새총이라는 무기의 특징이다.
새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패널티가 따른다. 새총을 조준하기 위해 몸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준하는 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조준 중 소음까지 발생한다. 물론, 사정거리가 길고 투구를 쓰지 않은 병사는 일격에 죽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투구를 쓰고 있는 병사에게는 당연히 무용지물이다. 이처럼 다양한 제약을 통해서 본작은 잠입 플레이를 '권장한다'.
물론 잠입을 권장한다는 것이 적을 죽이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본작은 대부분의 구간이 매우 좁고 적의 수가 적기 때문에 잠입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적의 수가 적다는 것은 적을 죽이고 지나가는 것 역시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맵 상에 투구를 쓰지 않은 병사가 보인다면 가능한 많이 암살하는 편이 진행이 훨씬 수월해진다.
어느 정도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되고 적의 투구를 없앨 수 있는 연금술 탄환 '데보란티스'가 해금되는 순간부터는 은신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든다. 몰래 숨은 상태에서 적을 두세 명 암살한 다음에는 나머지는 당당히 격파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아미시아의 전투력이 크게 높아진다. 실제로 일부 구간은 아예 정면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레벨 디자인이 설계되어 있을 정도로 아미시아의 새총은 의외의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잠입과 전투 사이에서 좋은 합의점을 찾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순수한 잠입 위주로 진행하기에는 아미시아가 너무나 강해서 필요성이 덜 느껴지고 적들을 죽이면서 진행하기에는 잠입을 전제로 설계된 맵이 너무 작고 적의 수나 종류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양쪽을 균형 있게 조율하고 싶었다면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처럼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적의 종류를 좀 더 다양하게 했어야만 한다.
이외에도 플레이그 테일은 작품 전체에 걸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준의 결함이 조금씩 존재한다. 일단, 맵 전체에 걸쳐 퍼져 있는 연금술 재료들은 그 양이 너무 과하다. 주머니와 특수탄을 가득 채우고도 더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자원 배치가 엉망진창이다. 본작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작품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는 절묘한 자원 배치를 통해 난이도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킨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다. 덕분에 전투와 퍼즐에서 연금술과 새총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며 이는 난이도 하락에 크게 일조한다.
적들의 ai가 대단히 좋지 못한 점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낮추는 부분이다. 정찰 루트가 단순한 것은 물론, 눈앞에서 아군이 죽는 모습을 봐도 천천히 접근해서 말을 걸고 나서야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할 정도로 멍청하다. 인공지능의 설계 자체가 엉성한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대장장이 동료인 '로드릭'을 처음 만나는 구간에서 중갑병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킨다면 무적 상태인 적이 끝까지 쫓아오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게임의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동료에게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은 어째서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아미시아의 동료들은 적을 몰래 기절시키거나 잠긴 자물쇠를 푸는 등의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료에게 명령을 내려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 구간을 진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스크립트 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동료를 활용하는 순간은 다섯 번도 채 되지 않으며 이는 결국 동료 시스템이 그저 그럴듯하게 포장한 허울뿐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남동생 휴고 역시 마찬가지다. 휴고는 좁은 통로에 들어가 반대편에서 문을 여는 능력이 있으며 평소에는 아미시아의 손을 붙잡고 함께 다닌다. 반대편에서 문을 여는 능력 역시 다른 동료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구간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휴고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미시아는 휴고의 손을 놓고 혼자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휴고가 소리를 지르는 패널티가 있는 데다가 휴고가 주체적으로 하는 행동은 아예 없기 때문에 따로 행동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아예 없다. 따라서 휴고의 손을 놓고 혼자 행동하는 기능은 튜토리얼에서 한번 쓴 이후에는 엔딩까지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의미 없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이 역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크게 대조되는 부분으로 동료 시스템의 활용이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작의 가장 큰 결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스토리'다. 플레이그 테일의 스토리는 상당히 나쁘다. 판타지와 실제 역사를 결합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부족한 개연성이나 전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중요한 설정들은 플레이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좋지 못한 부분은 바로 '캐릭터'다.
플레이그 테일에는 많은 수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매력 없으며 비중 분배도 형편없다. 대표적으로 일차원적이기 그지없는 악역들이 있다. 작품의 끝자락에서 싸우게 되는 두 보스는 분명 연출이 정말 화려하고 규모도 장엄하지만 그 위엄을 뒷받침해 줄 서사가 부족하고 동기도 진부하기 때문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미시아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한 달 정도를 함께 지내며 플레이어에게는 얼굴 조금 비춘 동료들이 너무나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당황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멜리'나 '루카스'는 어느 정도의 비중과 서사를 갖추고 있어 이러한 문제가 덜하다. 하지만 '아서'나 '로드릭'은 각본의 실패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비중과 설명이 부족하다.
그나마 아미시아와 휴고의 남매 이야기가 볼 만하다는 점은 위안이다.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몰락해버린 가문을 등지고 도망친 남매 앞에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아미시아는 휴고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휴고가 일으키는 돌발적인 행동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 늘 고민에 빠진다. 휴고는 아직 어린 만큼 휴고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어머니가 너무나 그립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와중에 어릴 적부터 앓던 병은 끊임없이 휴고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본작의 부제인 innocence가 의미하는 것은 이 남매가 가진 순수함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였던 남매는 큰 시련을 겪으며 순수함을 잃어버린다. 사과나무에 새총 연습을 하며 기사 놀이를 하던 여자아이 아미시아는 어느샌가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도련님이었던 휴고는 그 천진난만하던 모습을 잃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된다. 비록 스토리 자체의 결함이 너무나 커서 남매의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했다는 점은 아쉽지만 두 아이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순수함을 잃어가는 모습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총점-
6/10
플레이그 테일은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조금씩의 결함이 존재한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분위기는 충분히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허술한 완성도로 그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뛰어난 그래픽과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기본에 충실한 게임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잔인한 묘사에만 거부감이 없다면 무난하게 해 볼 만한 작품이다. 쉽게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스토리보다 분위기를 중시하는 게이머라면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75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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