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조금 잡것 가득
Untitled Goose Game - 꽥꽥 꽥 꽥꽥꽥꽥 본문
타이틀명 : Untitled Goose Game
출시일 : 2019.09.20(Epic Games Store)
개발 : House House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작고 평화로운 마을, 그 외곽에 있는 숲에는 재앙의 화신이 살고 있다. 그 존재는 자신의 새하얀 날개를 펼치고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을의 평화를 위협한다. 주민들은 이 거대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표지판을 내걸고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지만 모든 저항은 부질없을 뿐이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엉망이 된 정원과 처참히 뭉개진 토마토 그리고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존재는 바로... 거위다. 꽥꽥
'Untitled Goose Game'(이하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은 기본적으로 2016년 발매된 'Hitman'을 연상시키는 샌드박스형 잠입 액션 게임이다. 국가 주요 인사를 암살하거나 테러 조직의 음모를 저지하는 등 장대한 스케일의 임무는 없지만 거위를 조종하여 마을 주민들의 눈을 피해 물건을 훔치거나 장난으로 골탕 먹이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거위에게는 손이 없기 때문에 노란 부리만 가지고 모든 임무를 해결해야만 한다. 물론 가끔 꽥꽥거리거나 날개를 펄럭거릴 수는 있다.
본작은 조작이 참 '거위답다'. 꽥꽥거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이목을 집중시키고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부리로 물어서 옮긴다. 땅에 떨어진 물체를 줍거나 은밀하게 이동해야 할 때는 그 기다란 목을 아래로 숙인다. 그리고 날개가 펼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날개를 펼친다. 사실상 물건 집기, 소리 내기, 숙이기 정도의 단순한 조작만을 요구하는 작품이지만 거위를 조종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조작이 무척 특별하게 느껴진다. 숙여야 집을 수 있는 물체와 그냥 집을 수 있는 물체의 구분이 어렵고 가끔 물체가 겹치면 원하는 것을 잡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외의 조작에 있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게임은 참 웃기다. 플레이어는 거위를 조종해 수첩에 적혀있는 임무를 하나씩 수행한다. 누가 작성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리스트를 지워나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마을의 다음 구획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어째서 거위가 주인공인 건지, 거위가 어째서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건지 알 방법은 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코미디일 뿐이다.
이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작품 전체에 퍼져있다. 제목 없는 거위 게임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유머는 다양한 슬랩스틱 코미디다. 신발 끈이 풀린 채로 물건을 훔치는 거위를 쫓아가다 넘어지는 것은 기본에 불과하다. 머리에 양동이를 뒤집어쓴 채 엉덩이로 토마토를 깔아뭉개고, 망치에 손을 찧어 뒤로 넘어가고, 물웅덩이 위에 엎어진다. 상황에 따라 흘러나오는 Claude Debussy의 피아노 전주곡은 마을 주민들이 펼치는 각종 슬랩스틱 코미디와 어우러지며 본작을 한 편의 무성 코미디 영화처럼 만들어준다. 넘어진 주민을 옆에서 꽥꽥거리며 약 올리는 재미는 덤이다.
섬세하게 설정된 상호작용은 슬랩스틱 코미디만큼이나 게임의 재미를 더해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면? 강물에 시원하게 빠트려 조용하게 만들면 된다. 무전기를 물고 꽥꽥거린다면? 다른 무전기에서 꽥꽥 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물체마다 상정된 다양한 상호작용은 임무를 해결할 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다양한 해결법을 생각해내는 데 있어 큰 힌트가 되어준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일품이다. 평상시에는 거위의 발소리만이 들리지만 위험한 상황이 다가올수록 더 크고 풍부한 배경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러다 주민을 따돌리고 상황이 안전해지면 음악은 다시 고요해지며 거위의 발소리만이 남게 된다. 이 음악의 절묘한 완급조절은 제목 없는 거위 게임만이 가진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물고 있는 물체나 장소에 따라 거위의 울음소리가 변화한다는 점 역시 좋았다. 유리병이나 고깔 같은 물체를 하나씩 잡아보며 울음소리의 변화를 들어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었다.
게임 플레이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상술했듯 본작은 샌드박스형 잠입 액션 게임이다. 임무 목표를 간단히 지정해 줄 뿐 그 해결 방법에 대해선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언제나 주변의 사물을 활용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예를 들자면 슬리퍼를 물에 빠트리라는 임무가 있고 그 슬리퍼는 어떤 남자가 신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남자가 방심한 사이 신발을 벗겨 물에 던지는 것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상을 조금만 바꾼다면 신발을 신고 있는 남자가 직접 물에 들어오도록 유도해 임무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이처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임무를 해결하는 것은 본작의 핵심적인 재미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힌트가 없다는 것은 게임의 난이도를 높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부 퍼즐은 다소 직관적이지 못한 해결법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게임 오버가 존재하지 않아 마음껏 재시도가 가능하고 대부분의 퍼즐은 적당히 머리를 쓰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난이도로 인해 불쾌한 느낌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아쉽게 느껴진 것은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경험을 해친다는 점이었다. 본작의 임무는 해결법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꽤나 많다. 대표적으로 뒷마당 챕터의 '누군가가 화려한 꽃병 깨도록 만들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임무를 확인한다면 꽃병을 들고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떨어트리게 한다던가 혹은 꽃병을 올려놓는 탁자를 미리 망가트려놓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사전에 정해져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이외에는 그 꽃병을 깨트리도록 만들 수단이 없다.
물론 모든 퍼즐에 대해서 창의적인 해결이 가능하도록 게임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제약이 걸린다면 이 작품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나 본작은 플레이 타임도 매우 짧고 엔딩 이후에 공개되는 고난도 임무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콘텐츠가 굉장히 적다. 가뜩이나 작은 볼륨을 가진 작품이 완전히 자유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는 것은 정말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거기에 몇 가지 임무는 그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 컨셉에 맞춰 정해진 물건들을 특정 위치에 모으는 임무는 매 구획마다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성취감도 전혀 들지 않고 지루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게임상에서 정해주는 물건을 찾아다 옮기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임무를 끝냈을 때 특별한 이벤트나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른 임무와 마찬가지로 수첩에 줄이 그어지고 끝이기 때문에 힘겹게 끝냈다 하더라도 허탈한 기분만이 든다. 피크닉, 쇼핑, 빨래, 근사한 저녁식사라는 멋진 컨셉이 아까울 지경이다.
엔딩 이후 열리는 고난도 임무 역시 마찬가지다. 작지만 알찬 오픈월드를 돌아다니며 퍼즐을 해결하는 것은 꽤나 재밌다. 하지만 부리로 무는 것조차 불가능한 양배추나 축구공을 힘겹게 밀어서 옮기는 것은 전혀 재밌지 않다. 심지어 미는 걸 멈추는 순간 마을 주민들의 의심이 바로 풀리기 때문에 일말의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노동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지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제목 없는 거위 게임에는 그 어떤 매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9월 23일 자로 추가된 2인 모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두 마리의 하얀 악마가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컨셉은 정말 끝내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한 모드였다. 하지만 막상 직접 플레이한 2인 모드는 엉망진창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거위 사이의 거리 제한이 너무나 짧다는 점이다. 이 거리 제한으로 인한 이동의 제약이 너무나 극심해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가 전혀 불가능하다. 차라리 1인 모드가 더 다채로울 지경이다. 넘쳐나는 각종 버그는 서비스다. 만약 2인 모드를 위해서 본작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게이머라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강력하게 권장한다.
-총점-
7/10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은 유머러스하고 독창적이지만 그만큼 한계가 명확한 작품이기도 하다. 본작이 가진 자유도 높은 게임 플레이는 일부 임무가 가진 결함과 작은 볼륨의 한계로 빛을 바라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꽥꽥거리며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것은 정말 재밌다. 작은 볼륨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그만큼 본작에는 큰 잠재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하얀 악마가 되어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게이머라면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837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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