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조금 잡것 가득
Hellblade: Senua's Sacrifice - 설득력 없는 메시지 본문
타이틀명 : Hellblade: Senua's Sacrifice
출시일 : 2017.08.08(steam)
개발 : Ninja Theory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든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보다 훌륭한 예술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의 제작 의도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로 포장했다 한들 부족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부족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Hellblade: Senua's Sacrifice'(이하 헬블레이드)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와 화려한 액션을 뽐내는 상업적 게임 사이에서 고심하던 본작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액션 게임이라 쓰고 조현병 시뮬레이터라 읽는다.
헬블레이드는 죽은 연인을 살려내기 위해 북유럽 신화의 사후세계인 '헬하임'으로 여정을 떠난 켈트 여전사 '세누아'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동반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세누아는 환청, 환각, 플래시백 등을 비롯한 각종 병세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자해와 편집증 증세가 나타날 정도로 깊게 고통받는 인물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다루는 작품이 아닌 만큼 작중에서 세누아의 정신질환은 '어둠'이나 '저주'따위로 은유되며 이로 인한 핍박과 불우한 과거사가 암시된다.
세누아의 병은 단순한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헬블레이드는 작품 전체를 통째로 소모해 세누아가 겪고 있는 고통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자 시도했다. 페이스 캡처를 통해 세누아의 처절한 감정 묘사를, 어지러울 정도의 블러 효과와 눈이 따가울 정도로 정신없는 이펙트를 통해 환시 증세를, 바이노럴 레코딩을 통해 녹음된 목소리로 환청 증세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스토리와 연출을 통해서 세누아가 받는 박해와 고통을 표현해냈다. 이처럼 조현병 시뮬레이터를 표방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신질환자들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체험시키고자 하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연출이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이 중 바이노럴 레코딩을 통해 녹음된 사운드는 본작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으로 뛰어난 공간감과 현장감을 자랑한다. 게임을 처음 켠 순간부터 헤드셋 사용을 강력하게 권장하는 문구가 출력될 정도로 개발진이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며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크게 향상시켜 준다. 사방에서 집요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들은 다른 게임에서는 겪어보기 힘든 독특하고 기분 나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전반적인 비주얼과 아트 역시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다. 맵은 매우 작지만 그만큼 인물과 배경 그래픽에 공들인 모습을 보여주며 디테일 역시 괜찮은 편이다. 어두운 색조를 통해 표현되는 세누아의 내면세계와 헬하임의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모습은 본작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냈다. 스팀판 기준으로 그래픽 대비 최적화 역시 만족스럽기 때문에 2020년 기준으로 비교적 낮은 사양의 PC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을 것이다.
액션 게임으로서의 미흡한 완성도
기괴한 조현병 연출을 빼고 게임 자체만을 본다면 헬블레이드는 퍼즐과 전투로만 구성된 극도로 평범한 일자 진행형 액션 게임이다. 그나마 본작의 게임 플레이가 가진 개성이라면 첫 전투부터 일정 횟수의 죽음이 누적될 경우 세이브 파일이 삭제될 수 있다는 문구가 출력된다는 점이다. 세이브 파일 삭제까지 요구되는 죽음의 횟수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이 시스템으로 인해 상당한 긴장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도 게임의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세누아가 겪는 공포를 과감하게 표현해낸 시스템임에는 틀림없다.
전투 시스템은 뼈대까지는 꽤나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다. 빠른 공격, 강공격, 타격을 적절히 조합해 적의 방어를 깨트리고 데미지를 주어야 한다. 만약 적이 공격해 온다면 회피나 방어를 선택할 수 있으며 정확한 타이밍에 방어를 성공시키면 적의 공격을 튕겨내며 빈틈을 만들어낸다. 공격을 충분히 성공시키고 허리춤에서 파란 문양이 빛나게 되면 포커스 능력을 사용해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이처럼 액션 게임으로서 정말 기본적인 시스템은 전부 갖추어져 있으며 타격감 역시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헬블레이드의 전투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적들이 너무나 단조롭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적이 게임 전체에 고작 4종류밖에 되지 않으며 행동 패턴 역시 두세 가지에 불과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패턴을 보충하고자 하는 목적인지 세누아의 처절한 사투를 강조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적들의 체력이 꽤나 높게 설정되어 있고 매 전투마다 상당한 수가 등장하기 때문에 템포가 굉장히 늘어지고 지루하다. 심지어 보스들마저도 두세 가지 패턴만을 반복할 정도로 행동이 단순하기 때문에 적어도 본작에서 전투로 재미를 느낄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거기에 전투를 더욱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은 전투 시스템 외적인 부분이다. 본작은 세누아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겪게 하기 위한 의도인지는 몰라도 튜토리얼이나 HUD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조작법이나 전투 방식을 스스로 익혀야만 하며 이는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게임을 일시 정지하면 나오는 조작법 설명을 읽고 기술과 시스템을 하나씩 추측해가며 게임을 익히는 것이 정신질환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어떠한 의도로 이렇게 설계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좁아터진 시야각과 끔찍한 카메라는 게임을 한층 더 답답하게 만든다. 시야각이 너무나 좁은 나머지 리스폰되어 등장하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며 적들의 공격을 피하다가 구석에 몰렸을 경우 벽이 화면 전체를 가려버리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최소한의 친절인지는 몰라도 시야밖에 있는 적이 공격을 시도할 경우 내면의 목소리가 말로 위험을 경고해 주기는 한다. 하지만 적이 사각에서 공격하는 것을 내면이 알려주는 것은 병이 아닌 초능력으로 느껴지며 답답한 전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는 매우 부족하다.
퍼즐은 전투 이상으로 본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투보다도 더욱 완성도가 떨어진다. 헬블레이드의 퍼즐은 맵 어딘가에 존재하는 룬 모양의 사물이나 그림자를 찾아 봉인된 문을 여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퍼즐 역시 기본적인 레벨 디자인이나 몇 가지 메커니즘은 완성되어 있지만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거나 여러 방식의 퍼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 타임 내내 똑같은 퍼즐을 계속 해결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정 사물에 대한 집착이나 공포를 보이는 정신질환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게임적으로서는 턱없이 깊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 산만한 작품에서 진행을 위한 길을 찾아다니는 것이 더 퍼즐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결과물보다 의도에 집중한 작품
앞서 계속 언급했지만 헬블레이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결함이 조현병 체험을 위해 의도된 사항인지 아니면 단순히 게임의 완성도가 낮은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본작이 직접 정한 매체는 어디까지나 '액션 게임'이다. 단순히 의도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넘어가기에는 액션 게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결여되어 있다. 끔찍한 카메라부터 고정 숄더뷰, 좁은 FOV, 존재하지 않는 HUD, 과하게 피로한 시각적 효과, 최소한의 튜토리얼조차 없는 구성, 단조로운 전투, 지루한 퍼즐 거기에 난해한 맵까지 다른 작품이었다면 결코 용납되지 않을 만한 결함이 너무나 많다. 이 모든 것을 단순히 조현병 체험을 위해 의도했다는 식으로 쉽게 넘어간다면 그것은 비겁한 변명이 될 것이다.
설사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헬블레이드는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정신질환에 대한 묘사와 전문가들의 자문에 대해 경고 문구가 출력된다. 그리고 클리어 이후 감상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 특전 영상에서는 얼마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본작을 연출했는지에 대해 열정적인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과연 이 경고 문구와 특전 영상이 없었다 하더라도 본작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 것인가?'에 대해서다.
의도를 배제한 상태에서 헬블레이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여전사의 처절한 사투를 다루는 흔하디 흔한 판타지 액션 게임에 불과하다. 본작은 세누아의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작품이 아니라 등 뒤로 한 발자국 떨어진 상태에서 세누아를 관찰하는 작품에 가깝기 때문에 조현병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그들에게 공감해본다는 의도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물론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세누아가 겪는 병세를 일부 체험해 볼 수는 있지만 단순한 게임적 연출 정도로 치부돼도 문제가 없을 수준에 불과하다. 오히려 북유럽 신화 기반의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마법이나 저주가 아닌 정신질환에 대한 묘사로 파악하는 것이 더욱 힘들 것이다.
즉, 헬블레이드는 자신을 정신질환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게 될 뿐이다. 게임 외적인 설명을 통해 거창한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뿐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스토리와 연출이 독특하면서도 괜찮고, 음향과 그래픽이 뛰어나고, 게임성과 편의성은 형편없는 흔해빠진 액션 게임일 뿐 그 이상의 무언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제작 의도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품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 그 거창한 주제 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의도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헬블레이드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인 소재로써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제 전문가나 환자들의 자문을 아끼지 않은 개발진의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결과물에서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이고 이에 따르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사회적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본작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액션 게임도 예술 게임도 아닌 어중간한 무언가로는 그 어떤 메시지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총점-
5/10
헬블레이드는 게임성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메시지가 와닿지 않는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정신질환의 증세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을지언정 게임성에서는 그 설득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훌륭한 음향과 기괴하고 정신없는 연출은 다른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경험이기 때문에 아주 독특한 경험을 원하는 게이머라면 긍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으로서의 일반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에게는 결코 추천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41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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