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조금 잡것 가득
Hades - 로그라이크? 갓-라이크! 본문
타이틀명 : Hades
출시일 : 2018.12.06(얼리 액세스) 2020.09.17(정식 출시)
개발 : Supergiant Games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공식 한국어화
소위 '갓(God)겜'은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신조어 중 하나다. 그 쓰임새가 신이 만든듯한 훌륭한 게임성을 찬양하는 의미건 처참한 완성도를 비꼬는 의미건 간에 특정 게임에 갓겜이 수식어로 붙는 모습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 게이머들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갓겜이라 칭하는 자신만만한 작품이 나타났다. 그 작품의 이름은 바로 신들이 등장하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란 의미에서 자신을 '갓라이크(God-like)'라 칭하는 'Hades'(이하 하데스)다. 한국 게이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개발진이 알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데스에게 있어 갓겜이라는 수식어는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단어다. 그만큼 갓겜이라는 소개를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최고의 작품이자 갓라이크 그 자체가 바로 하데스다.
극한으로 다듬어진 로그라이트
하데스는 Supergiant Games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핵 앤 슬래시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의 아들이자 불멸자인 '자그레우스'를 조종해 지긋지긋한 지하세계를 탈출하고 지상으로 나가야만 한다. 귀여운 조카를 기특하게 여긴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그레우스를 위한 각종 은혜를 내려준다. 랜덤으로 내려오는 은혜의 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던전을 헤쳐나가며 수많은 죽음을 반복하는 자그레우스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 바로 하데스다.
핵 앤 슬래시에 로그라이크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흔하디 흔한 조합이기 때문에 비슷한 장르를 즐겨온 게이머들에게는 전혀 새롭게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까지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본작의 개발진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유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장르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극한까지 다듬어 냈다.
로그라이크 장르가 가진 단점은 명확하다. 한 번의 죽음으로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부담감, 이에 동반하는 높은 난이도와 낮은 접근성, 랜덤 생성이 가지는 반복적인 패턴의 한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죽었을 때 찾아오는 좌절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데스 역시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는 만큼 이러한 단점의 일부는 공유하고 있다. 다만 그 단점을 아주 정교하게 보완해냈을 뿐이다.
개발진이 가장 주목한 것은 죽음이 주는 좌절감이다. 하데스는 플레이어의 죽음이 게임에 익숙해지기 위해 억지로 좌절감을 겪는 과정이길 원하지 않았다. 불멸자라는 설정을 십분 살려 게임을 막 시작한 상태에서의 자그레우스를 의도적으로 약하게 만들어 플레이어가 탈출 중 여러 번 죽어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실패나 초기화가 아닌 영구적인 성장과 새로운 스토리의 진행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엄밀히 말하자면 하데스는 로그라이크가 아닌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일부 차용한 '로그라이트'에 훨씬 더 가깝다. 죽으면 모았던 신들의 은혜가 모두 사라진다는 점, 던전 구조와 몬스터 배치가 랜덤 생성이라는 점, 그리고 운 요소가 크게 개입된다는 점까지는 분명 로그라이크의 그것임에 틀림없지만 죽음 그 자체에도 역할을 부여하고 게임의 일부로 설정함으로써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더라도 은혜와 골드를 제외한 모든 자원은 영구적으로 자그레우스의 소유가 된다. '열쇠'와 '어둠'은 자그레우스의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고 '보석'은 던전에 각종 편의시설을 추가해 다음 탈출에 대비하거나 자그레우스의 집을 꾸미는 데 사용된다. 어둠의 경우는 정말 중요한 자원으로 어둠을 소모해 성장시킨 자그레우스는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고 강해진다.
결국 죽으면 죽을수록 자그레우스가 강해지기 때문에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게이머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클리어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순히 '죽을수록 강해진다' 정도로는 같은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도록 유도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영리한 설계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하데스는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스토리'를 선택했다.
하데스는 풀보이스 더빙이 진행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상황별 스크립트와 이벤트가 존재한다. 자그레우스를 죽인 몬스터, 그 몬스터에게 죽은 횟수, 들고 있는 무기, 받은 은혜, 장착한 장신구,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 스토리 진척도 심지어 클리어 타임까지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에 따라 새로운 대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무식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 효과만큼은 탁월하다. 매번 바뀌는 캐릭터들의 대화를 감상하는 재미만으로도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게 되며 60시간 이상을 플레이해도 확인하지 못한 대화가 한참 남아있을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기 그지없다.
단순히 대사량만 많은 것이 아니다. 유쾌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의 주인공인 자그레우스를 비롯해 하데스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고유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자그레우스에게 호의를 보이고 악역이라 부를만한 캐릭터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성으로 인해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척 즐겁다. 거기에 '가족'이라는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펼쳐지는 스토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올림포스 12신 정도만 얼핏 알고 있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여 있다. 물론 그쪽 방면 지식이 풍부한 게이머라면 재해석된 신들의 모습에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는 단순히 재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탈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캐릭터마다 호감도 보상으로 하나씩 제공하는 장신구는 탈출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며 아예 던전 내부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자그레우스를 직접 도와주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호감도를 쌓는 과정 역시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한 다음에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도 '죽음을 통한 성장'의 일부로 설계되어 있다.
하데스도 분명 장르가 가진 근본적인 단점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결국 죽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랜덤 생성되는 맵과 몬스터 배치는 생각보다 그 종류가 매우 적어 탐험이라고 부를만한 요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느끼기가 힘들 정도로 플레이를 유도하는 설계가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도 풍부한 스토리 덕분에 매너리즘을 느낄 일이 거의 없다. 만약 하데스의 반복적인 구조에 지루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이미 몇십 시간 정도는 훌쩍 넘긴 다음일 것이다.
무궁무진한 세팅을 통한 높은 플레이 자유도
심장이 뛰게 만드는 멋진 사운드와 아름다운 아트워크 역시 하데스의 큰 장점이지만 게임 플레이는 그 이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본작의 전투는 공격과 마법 그리고 약간의 무적 시간을 가진 회피로 구성되어 있다. 조작 반응성이 즉각적이고 뛰어나며 타격감도 무척이나 경쾌하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재미를 잘 살려냈다. 거기에 로그라이크 특성상 층을 하나씩 올라가며 받은 은혜에 따라 모든 능력이 변화해 종국에는 처음과 완전히 다른 자그레우스를 플레이하게 된다. 특히 한 번의 탈출에서 두 번까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다이달로스의 망치'같은 경우는 플레이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형지물과의 상호작용 역시 훌륭하다. 적을 밀쳐내는 능력이 있다면 적을 벽에 부딪히게 만들거나 구석에 몰아넣어 큰 데미지를 줄 수 있고 신전의 기둥을 파괴해 낙석으로 적을 처치할 수도 있다. 모든 맵에 존재하는 함정은 자그레우스에게 있어 큰 위협이지만 대부분의 함정은 적에게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밖에도 일부 공격은 적의 원거리 공격을 지울 수 있거나 등 뒤를 공격하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등 컨트롤에서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
전투 자체도 재밌지만 그걸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은 세팅의 높은 자유도다. 자그레우스는 탈출에 앞서 자신이 사용할 무기와 장신구를 고를 수 있다. 하데스에서는 총 6가지 무기가 등장하며 각 무기는 '양상'이라 불리는 4가지의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어떤 양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너지가 좋은 은혜나 게임 플레이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24가지의 무기가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신구 역시 마찬가지다. 장신구는 25가지 일반 기념품과 5가지 인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기념품은 원하는 은혜를 쉽게 찾도록 도와주거나 최대 체력을 늘려주는 등 편리한 능력을 제공하며 인형은 한 번의 탈출에서 몇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강력한 기술을 추가해 주기 때문에 무기와 더불어 이들을 선택하는 것조차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기와 장신구를 고르고 탈출을 시작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은혜를 고를 시간이다.
하데스에서는 총 아홉 명의 신이 자그레우스에게 은혜를 내린다. 각 신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는 무기와 플레이 스타일이 어떤 신의 은혜와 가장 잘 맞을지 고민해야만 한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방패의 밀쳐내는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밀치기에 특화된 '포세이돈'의 은혜를 받아 적들을 핀볼처럼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건틀릿의 빠른 공격 속도를 발휘하기 위해 '제우스'의 은혜를 받아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나가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은혜는 조합되면 될수록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적절한 세팅에 성공했을 경우 마지막 지역에 도달할 때쯤이면 공격 몇 번에 적 전체가 쓸려나가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다. 거기에 특정 조합을 완성했을 때 등장하는 '듀오 은혜'나 '전설 은혜'는 얻기만 한다면 게임 플레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이들을 찾기 위해서라도 탈출하는 동안 여러 조합을 시도해보게 된다. 물론 장르 특성상 랜덤성이 크게 관여하기 때문에 원하는 세팅을 온전히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준비된 은혜의 종류가 매우 많으며 대부분이 개성 있고 강력하기 때문에 새로운 은혜를 발견하고 상황에 맞춰 세팅을 구성해 나가는 것 자체가 무척 재밌다.
모두를 배려한 난이도 구성
하데스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장점은 난이도 구성이다. 어떻게든 클리어까지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구성뿐만 아니라 게임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를 위한 '갓모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탈출에 성공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탈출에 성공했다면 게임에 변화와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인 '형벌 규약'이 추가된다. 몬스터가 강해 지거나, 세팅에 제한이 걸리거나, 보스의 패턴이 변화하거나, 제한 시간이 생기는 등 세부적인 조건을 플레이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으며 제약을 추가하고 탈출에 다시 성공할 때마다 새로운 보상을 제공한다.
어마어마한 수의 제약을 한 번에 걸어 하드코어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지, 아니면 하나씩 제약을 추가해 나가며 보상을 얻고 자신의 실력을 성장시킬지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자유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이 게이머의 성향에 맞춰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훌륭하게 느껴지며 걸려있는 제약에 따라 대사에 변화를 주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아 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자유로운 난이도 설정과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보상은 강력한 중독성을 유발하며 하데스를 플레이하는 손을 놓기가 어렵게 만들 것이다.
-총점-
10/10
하데스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아트워크, 피가 끓는 음악, 상쾌한 액션, 매력적인 캐릭터, 높은 리플레이 가치 거기에 뛰어난 접근성까지 부족한 부분이 없으며 방대한 분량의 스크립트를 준비해 장르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고 한계를 극복해냈다.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만한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갓겜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팀 리뷰 : steamcommunity.com/id/thiepriest/recommended/114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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