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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조금 잡것 가득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어두운 세상 속 섞이는 술 본문

게임 리뷰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어두운 세상 속 섞이는 술

시프리스트 2018. 11. 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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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엔딩에 대한 간접적인 누설이 있습니다


타이틀명 :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

출시일 : 2016.06.21

개발사 : Sukeban Games

플레이한 플랫폼 : PC(steam)

사용 한국어 패치 : http://team-sm.tistory.com/96



 술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희노애락과 함께 해왔습니다. 기원전,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술을 담가먹었던 흔적이 발견되고 성경에서는 포도주에 관련된 구절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 중 술과 축제를 관장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존재했다는 점만 보아도 과거에서부터 축제와 같은 즐거운 자리에서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취급을 받았다는걸 알 수 있으며 중국 은나라에서는 주왕이 고기를 나무에 매달고 술로 연못을 만들어 오늘날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 일컬어지는 탐욕과 쾌락의 장소를 만들어 놀음을 펼치기도 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술이 과거서부터 얼마나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죠. 


 물론, 술은 역사적으로 악마와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지에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장수인 장비가 술로 인해 일을 그르치고 후회하는 장면이 나오며 근대 미국 사회에서는 술을 죄악으로 취급하여 내린 금주령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악마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한 법일까요?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매체에서 술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사고와 음주로 인한 질병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한편, 사회의 아픔을 잊기위해 또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술집을 찾는 사람들로 늦은 밤까지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술이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술 없이 살기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한거죠. 술은 현실에서 얻은 상처를 잊고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며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 사회가 아닌 먼 미래, 그것도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고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의 술집의 모습은 어떨까요? 그런 사회에서의 술은 사람들에게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그리고 술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극적이고 흥미롭지 않을까요? 이러한 배경을 채용한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할 VA-11 HALL-A: Cyberpunk Bartender Action입니다. 



'술을 섞고 삶을 바꿔줄 시간이군.' 질의 입버릇이자 본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



손님 한명한명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VA-11 HALL-A, 게임내에서는 이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발할라'라고 부르죠. 발할라는 작중 배경인 글리치 시티에 존재하는 한 작은 바(bar)의 이름입니다. 플레이어는 이 곳에서 바텐더인 질(Jill)이 되어 바텐딩을 하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글리치 시티가 사람들의 몸에 나노머신을 심어 언제나 감시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인 만큼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바에 찾아옵니다. 살인청부업자부터 해커, 매춘로봇, 심지어 뇌만 둥둥 떠다니는 로봇까지 단순한 손님 한명조차도 강렬한 개성과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건 본 작품의 큰 매력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텍스트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질 역시 본인의 개성이 뚜렷하고 아주 능동적인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손님들과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것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조언을 직설적으로 말해주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삶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질이 아주 뚜렷한 캐릭터성을 지닌채로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개입은 거의 없이 이야기는 일직선적으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개그성 배드엔딩을 제외한다면 엔딩은 단 하나뿐이며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추가되는 것도 몇몇 인물의 후일담일뿐 결말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상 게임의 자유도는 완전히 없는 셈 이지만 질의 캐릭터성이 훌륭하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질의 내면 속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 역시 그리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몰입을 전혀 해치지 않아 자유도를 버리고 서사에 집중한건 훌륭한 선택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주인공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시민의 이야기라는 점 입니다. 비슷한 진행방식의 게임인 Paper, please를 예시로 들자면 같은 소시민형 주인공이 검문소에서 나라의 명령대로 업무를 볼 뿐이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나라에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으며 극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나라에서 탈출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이버펑크 배경의 게임인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사이버펑크 2077만 봐도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며 자신의 적과 맞서 싸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죠. 하지만 발할라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의 일개 바텐더로 시작해 바텐더로 끝납니다. 핸드폰의 뉴스나 인물들의 이야기로 글리치 시티의 어두운면을 보여주기는 하나 정말 거기까지일뿐, 질은 세계관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맞서싸울 적도 사회를 바꿀 힘도 없으며 질 본인조차 그럴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본인의 바텐더 업무에 충실할 뿐입니다. 바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 역시 사이버펑크가 버무려져 있을뿐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와 근본적으론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사이버펑크를 배경으로 잔잔한 이야기만이 흘러간다는 점은 독특하면서도 또 역으로 스케일이 큰 사이버펑크 작품들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숨겨진 요소나 후일담들을 해금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게임 자체는 정말 쉽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배경이나 서사에 관한 내용은 이쯤하고 그래도 역시 게임인 만큼 이제 플레이 관점으로 넘어가보죠.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토리 자체에 플레이어가 개입하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파트가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바텐딩입니다. 5가지 종류의 술을 정해진 양만큼 집어넣고 온더록과 숙성 여부를 결정한 후 가볍게 섞을지 오래 혼합할지 결정하면 그에 맞는 술이 나옵니다. 거기에 상황에 맞춰 카모트린의 양을 조절해 알콜 도수를 결정하기만 한다면 더 신경써야 할 요소도 없습니다. 술을 제조하는 동안 언제든지 게임 상에서 레시피를 검색할 수 있으며 잘못 만들더라도 아무런 패널티 없이 다시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술만 만드는 것의 난이도를 본다면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렇게 쉽기만 한다면 플레이가 너무 밋밋해지기에 제작진은 다른 요소로 조금씩 변화를 줬는데 바로 손님의 주문을 읽어내는것입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평범하게 술을 주문하며 상점에서 특정한 아이템을 구입해 질이 만족한 상태라면 잡생각을 하지않고 주문에 대한 생각만 하기때문에 손쉽게 주문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손님들은 조금(?) 특이하게 주문하기도 하는데 수수께끼 형식으로 주문을 하는가 하면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원하는 술과 다른 술을 주문하거나 우울한 마음에 평소 주로 즐겨먹던 술이 아닌 다른 술을 주문해 어떤 술을 줘야할지 고민해야 하기도 하는등 어느정도 꼬인 주문을 받아야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아예 아무 종류의 술이나 달라고 주문하기도 하는데 이럴때는 일부러 가능한 비싼 술을 제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카모트린으로 일부러 손님을 취하게 만들어 본심을 듣는 것도 색다른 느낌입니다. 


 다만 역시 술 제조 자체엔 난이도가 전혀 없고 주문을 받는것만을 반복하는 한계로 후반부에는 루즈한 느낌이 적지않게 있습니다. 뉴게임 플러스를 한다 해도 바텐딩이나 주문 자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2회차에 대한 동기부여가 조금 약해지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무슨 물건인지 알기 위해선 사보는 수 밖에 없다



물건을 구입할수록 질의 방은 오타쿠스러워진다


 퇴근한 이후 다음날엔 질의 방에서 잡다한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매번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게시글이나 찌라시 뉴스를 통해 세계관에 대한 내용을 조금씩이나마 접할 수 있는데 바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크던 작던 연관된 내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제법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상점에 방문한다면 바에서 번 돈으로 방을 꾸미는 아이템이나 음악등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가끔 질이 특정한 물건을 원하는때가 있는데 물건을 원할때 사지 않는다면 그 물건에 대한 생각으로 바에서 주문을 받을때 잡생각으로 인해 주문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물론 플레이어가 기억한다면 전혀 패널티가 아닌데다가 이때 나오는 질의 잡생각들이 귀엽기 때문에 일부러 사지 않는것도 플레이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점의 아이템들로 방이 꾸며지는건 좋지만 놓이는 위치가 고정인데다가 편집도 불가능한 주제에 구입 전까지 외형을 알 수 없는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미리보기로 아이템의 외형이라도 보여줬다면 조금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게임내에서 몇번 암시가 나오고 조금만 신경쓰면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지만 돈을 과도하게 낭비할 경우 후반부에 비싼 월세를 내지 못해 배드엔딩을 봐야하는것 역시 조금 구조가 좋지 못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월세를 조금 줄이거나 배드엔딩 조건을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씩 나오는 이벤트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크박스는 60곡에 가까운 방대한 사운드트랙을 자랑한다


 눈을 돌려서 게임 구석구석을 살펴본다면 여러모로 공들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래픽적인 면에서 발할라의 그래픽이 뛰어난건 아니지만 고전풍 그래픽을 세련되게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거부감은 덜하게 만들었단걸 알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많이 들어간것도 아니고 화려한 연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독특하면서도 개성넘치는 그림체의 스탠딩 cg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ui는 딱 게임에 맞게 적절하게 만들어진 느낌입니다.


 또 게임의 ost 퀄리티가 굉장히 준수한데 게임내에 제공되는 주크박스에 12곡이나 넣을 수 있음에도 좋은 곡이 너무 많아 어떤 곡을 넣어야할지 고민될 정도입니다. 원하는 구간을 따로 들어본다거나 재생목록을 만드는 등 편의기능이 조금 부실하여 주크박스에 곡을 편집해 넣는것이 귀찮기는 합니다만 워낙 곡들의 퀄리티가 좋고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기때문에 기능의 도입 자체는 아주 훌륭한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걸쭉한 성인유머들과 각종 패러디가 들어간 대화들, 곳곳에 숨겨져 있는 각종 이스터에그와 스토리 떡밥, 연출에 공들인 이벤트들, 캐릭터들간의 복잡미묘한 연애감정등 제작진이 게임에 들인 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플레이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제작진의 애정과 열정이 가득 들어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총평-



   

깊은 이야기와 화장실 유머가 어우러진 성인 취향의 수작 텍스트게임! 사이버펑크, 미소녀, 텍스트게임을 사랑한다면 최고의 게임!


 장르 특성상 취향을 탈 수밖에 없는데다가 매니아적 요소가 가득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정말 매니아를 위해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취향만 맞는다면 이만한 갓겜이 없을거라고 장담합니다. 2020년에 후속작인 N1RV Ann-A: Cyberpunk Bartender Action가 나온다고 하니 니르바나를 해보고 싶으시다면 미리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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